-
제천 배론성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여행지여행 2018. 6. 22. 21:09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배론성지 이름의 유래
우선 배론성지에 대한 이름의 유래를 알아야 정확히 성지이름을 말할 수 있다. 이는 베논, 베론, 베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지고 쓰여지기 때문이다. 배론은 한자어이며 ‘배의 밑바닥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배론성지 관광안내소 직원분께 여쭤보니 이곳 배론성지의 지형적 특성으로 입구와 출구가 좁고 가운데는 넓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론이 있었다면 직접 확인할 수 있겠지만 구글맵을 통해 어렴풋이 성지의 지형을 확인했다.
-배론성지의 역사적 중요성
배론성지는 원래 토기를 굽는 곳이었다고 한다. 1791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이곳으로 숨어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도 만들어진다. 2001년 한국 천주교 성립과정에서 중요성으로 추북도 기념물 118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이 한국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첫째로 황사영(알렉시오)이 신유박해(1801년)를 피해 배론의 토굴에 숨어 백서를 쓴 곳이다. 흰 비단에 쓰여졌다 하여 백서로 불리는 이 글에는 신유박해의 발단과 과정, 순교자들의 죽음 등이 매우 작은 글씨로 적혀있다. 원래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기 위한 글이었으나 황사영이 의금부에 체포되면서 백서 역시 압수되었다. 같은해 대역부도의 죄로 처형당하고 백서는 시간이 흘러 현재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황사영은 다산 정약용의 큰형 정약현의 사위로 이 사건으로 인해 정약용 역시 강진으로 유배보내진다.
둘째로 한국의 첫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신학교라 하여 유럽의 거대한 건축물을 상상하면 안된다. 1855년 천주교 박해로 고통받고 있던 시기 조선교구의 메스트르 신부는 배론의 장주기 요셉의 집에 첫 신학교를 만들게 된다. 전통 초가집에 학교를 설립한 것이기 때문에 방이 두개밖에 없는 아담한 신학교이다. 두명의 외국인 사제(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가 차례로 부임하여 여러명의 신학생들을 양성하게 된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두명의 신부와 장주기, 그리고 세명의 신학생이 순교하고 신학교 역시 문을 닫게 된다. 옛 신학교는 6.25에 파괴되어 현재의 건물은 2003년 복원된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묘가 있는 곳이다. 그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역시 한국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순교자이며 이러한 부모밑에서 어릴적부터 영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중 최방제, 김대건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받아 신부가 되었다.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외국인 사제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천주교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12년 동안 쉬지않고 천주교를 위해 힘쓰던 그는 결국 마흔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베르뇌 주교와 푸르티에 신부, 신자들에 의해 그의 시신은 이곳 배론성지 양지바른 뒷산에 안장되었다.
-신유박해의 역사적 배경
신유박해는 순조1년 신유년에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천주교 박해이다. 천주교는 18세기 말 중국을 통해 학문으로 조선에 전파되었고 이를 남인들이 받아들여 신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순조 즉위 후 여러 사건에 의해 천주교에 대한 나쁜 인식이 퍼지고 남인을 누르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이 합쳐져 신유박해가 일어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정약용의 형 정약종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가족인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 역시 고문을 받고 유배보내진다. 이후 황사영은 배론성지로 숨어 중국에 보낼 밀서를 쓰게 된다.
-배론성지의 아름다움
배론성지는 주론산 능선에 둘러싸인 곳이다. 울창한 숲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길을 걷다 보면 새소리와 풀벌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사계절 모두 자연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단풍이 물드는 가을의 미가 단연 최고라 한다. 또한 전통 가옥과 기와 지붕의 형태를 갖춘 건물들이 이러한 한국의 자연미와 어우러져 한국의 성지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대성당과 소성당 역시 자연 경관을 해친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숲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
-여행지로서?
배론성지는 관광지가 아닌 천주교 성지, 성당이기 때문에 소란스러움과 활기참과는 거리가 멀다. 표지판에서 볼 수 있듯이 짧은 옷차림, 슬리퍼 등을 착용하면 안되며 음주, 고성방가 또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곳은 조용히 산책을 즐기고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의 하모니를 느끼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미취학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많으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마땅히 없고 차분한 분위기의 천주교 유적지만 돌아보게 되어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연인끼리 온다면... 강추이다. 둘만의 이쁜 사진을 남길 곳이 많다. 한 번 둘러보기에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천주교 신자들은 거의 한번씩은 방문하는 필수 여행지이다. 평일 낮에 가도 자매님들이 함께 걸으며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선 말기 한국 천주교에 가해졌던 박해와 그 과정에서 순교한 교인들의 이야기를 알면 배론성지를 둘러볼 때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배론성지의 역사적 중요성과 상관없이 이곳의 아름다움 때문에 방문한다고 해도 만족할 수 있다. 특히 가을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좋다.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 천주교 신자
- 한국 천주교 역사에 관심있는 자
- 세상사 잊고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은 자
- 사랑하는 이와 조용히 걷고 싶은 자
- 한국의 미를 배경으로 사진찍고 싶은 자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풍문화재단지, 청풍호(충주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역사, 문화 관광지 (1) 2018.06.30 서울 선릉과 정릉, 도심속에서 왕릉을 만나다. (0) 2018.06.28 제천 박달재 목각공원 왜 제천 10경에 속하는가? (0) 2018.06.23 영월 장릉에서 느껴지는 슬픈 단종의 인생 (0) 2018.06.22 제천 의림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 (0) 2018.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