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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선릉과 정릉, 도심속에서 왕릉을 만나다.여행 2018. 6. 28. 11:50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선릉에 대하여,
선릉은 조선 제9대 왕 성종, 그의 세번째 부인인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 같은 언덕에 나란히 위치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Y자로 갈라진 다른 언덕에 위치하는 동원이강릉 형태이다.
정자각을 기준으로 왼쪽이 성종의 능, 오른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정현왕후의 능에는 병풍석이 없는 차이를 보인다.
-정릉에 대하여,
정릉은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능이다. 1545년 정릉은 원래 그의 두번째 부인인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경기도 고양시) 옆에 조성되었는데 1562년 그의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의 요청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다. 중종과 같이 묻히고 싶었던 문정왕후, 그러나 그녀의 능은 서울시 노원구 태릉에 조성되어 정릉(서울시 강남구), 희릉(경기도 고양시), 태릉(서울시 노원구)이 각기 다른 지역에 위치하게 된다.
-성종에 대하여,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을 물리고 왕으로 즉위한 세조는 슬하에 정희왕후 윤씨의 아들인 의경세자(첫째)와 해양대군(둘째)를 두었다. 세조의 즉위 직후 왕세자로 책봉된 의경세자는, 그러나 20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이에 둘째인 해양대군이 제8대 왕 예종으로 즉위한다. 허나 예종 역시 재위 13개월만에 승하했다.
일반적으로 예종의 아들이 제9대 왕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 일각에서는 한명회의 입김으로 예종의 아들이 아닌 의경세자 덕종의 둘째 아들이 13세의 나이로 제9대 왕 성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의 킹메이커로 제7대 왕 세조 즉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 자체로도 권력가이지만 두명의 딸을 왕과 혼사시켜 절대 권력을 누린다. 첫째딸은 예종의 첫번째 부인인 장순왕후, 둘째딸은 성종의 첫번째 부인인 공혜왕후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자신의 형인 월산대군 이정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 이현을 제치고 한명회의 사위인 그가 성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13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했기 때문에 그의 할머니,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에 의한 수렴청정이 7년간 지속되었다. 그후 재위기간 25년 동안 경국대전, 국조오례의를 반포하고 조세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
-중종에 대하여,
성종에게는 세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번째 부인은 한명회의 큰딸인 공혜왕후로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에 두번째 부인인 폐비 윤씨가 중전이 되어 연산군을 출산한다. 이후 그녀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세번째 부인은 정현왕후로 폐비 윤씨가 물러난 뒤 중전의 자리에 오른다. 중종은 그녀의 아들로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의 뒤를 이어 제11대 왕에 즉위한다.
반정에 의해 왕이 되었기때문에 초기 반정 공신 세력에 좌지우지 되는 듯한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그러나 39년의 긴 재위기간동안 조광조가 꿈꾸었던 왕도정치를 위해 성실하게 일했다고 한다.
-격변의 시대
세종과 문종의 태평성대 이후 세조의 계유정난을 시작으로 왕과 신하의 갈등, 왕족간 왕위다툼으로 조선왕조는 다시금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의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성종의 할아버지인 세조와 장인어른 한병회는 영화 ‘관상’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성종과 중종 사이 연산군은 영화 ‘왕의 남자’, ‘간신’에서 볼 수 있다. 성종을 다룬 영화는 ‘왕을 참하라’ 등이 있다.
-임진왜란의 피해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파헤쳐져 왕과 왕비의 시신이 소실되고 재궁이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로인해 현재 선릉과 정릉의 석실은 비어있을 가능성이 크며 용안이 그려진 그림 또한 불타없어져 그들의 실제 모습을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행지로서,
왕릉이지만 유적지 보다는 도심 속 공원같은 느낌이 강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걷다보면 여기가 정녕 서울 강남인지 의심이 든다. 고개를 들어 주변의 빌딩숲을 보고나서야 서울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다른 왕릉과 다르게 데이트하는 연인들, 모임 후 방문한 어머님 단체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 벤치에 앉아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선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서울 중심지라는 지리적 장점 외에도 왕의 봉분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던 봉분을 바로 앞에서 보게 되면 의외로 큰 규모와 석물에 놀라게 된다. 또한 왕의 선릉과 왕비의 선릉의 차이, 가령 병풍석의 유무, 등을 공부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정리하자면,
서울 선릉과 정릉은 역사 유적지이자 도심 속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조용한 공원이기도 하다. 한 번 둘러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야간에는 조명도 들어오므로 나들이 장소, 데이트 장소, 사색 장소로 좋은 곳이다.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조선 왕릉의 봉분, 석물, 조성 등을 가까이에서 보고싶은 자
- 서울에서 울창한 나무 숲을 걸어보고 싶은 자
- 자연적인 분위기의 나들이 장소를 원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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